박범신 "은교"
노인 시인의 여고생에 대한 사랑.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그냥 나한테 용납이 안되는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것은 우연히 서점에 갔는데, 표지에 있던 그림이 야릇해서였다. 오른손으로는 막을 걷고 왼손으로는 소매없는 원피스의 스커트 자락을 올리는 소녀. 그 소녀를 바라보는 정체모를 남자의 이미지. 저 왼쪽으로 보이는 풀을 뜯고 있는 말. 그리고 표지에 써 있는 말 "그 애는 손녀 같았고 ...중략... 누나나 엄마 같았다." 그냥 읽어봐야 겠다 싶었다. 최대한 다양하게 많이 읽자로 나의 독서 모토를 바꿨으므로 개인적인 편견 없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을 때는 그 이유가 있을거야라며 나를 설득해서 구매했다. 그러나 역시 불편하다. 이적요의 혹은 서지우의 은교는 그냥 한없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묘사하는 여고생은 그냥 여인이다. 소설이니까 괜찮을까? 아니 난 그냥 싫었다. 여고생을 여고생으로 보지 못하는 그 묘사들이 섬뜩하게 싫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왜 시작했을까를 후회했다. 물론 다른 소설에서도 어린 여성의 이미지가 성인 여성의 그것으로 묘사되어 불편함을 느낀 적이 많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참고 책을 읽어나갔던 이유는 그 것이 이야기의 사소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교는 이야기의 태반이 그랬다. 은교는 성인 여성처럼 묘사된다. 은교의 이미지는 여고생의 순수함으로 표현되지만, 은교과 관련된 일에 대한 묘사나 행동을 이야기 할 때는 순수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아! 선을 넘지 못하는 약한 나.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상상을 펼치는 것인데, 나의 상상은 자꾸 현실안에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 같다.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숲 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차마 한꺼번에 끝까지 쓰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에 깃든 종환과도 같은 고독을 깊이 만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 나는 왜 불과 같이, 너를 갖고 싶었던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모든 게 끝나버릴 질문이겠지.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 네가 알아듣기 편하도록 쉽게 설명하자면, 사랑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어서 나는 그 말, 사랑을 믿지 못한다."
"바다가 자유롭게 키운 처녀였으니 당연히 그럴 터였다."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간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하나의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그리운 그를 향해 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