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전경린, "최소한의 사랑"

멋대로g 2014. 8. 17. 22:27

문득 읽다가 책 뒷 면을 봤다. 전자책이기 하지만. 2012년 발간. 나 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모르고 있던 것일까.

사실 그녀의 단편 몇 개를 짜집기 해서 재판하는 책들이 싫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못본체 한 것일까?

그녀... 역시 나를 떠나게, 혼자 있게 하고 싶어하는. 요새 나 그냥 사람이 싫다. 미쳤나봐. 친구들도 안 만나고. 사무실 부스 안에서 혼자 고립된 느낌으로 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최소한의 사랑"을 읽으니 문득 제주도에 왜 안 갔을까...라며 또 한 번의 후회가 밀린다. 계획대로 제주도에 갔으면 지금 일주년을 기념하고 있었을까? 벌써 서울로 다시 올라왔었을까. 왜 안 갔을까. 이렇게 결국 안 보고 살 걸, 무슨 미련에. 푸른피 푸른심장을 가진 고독한 여자들. 전에는 떠돌고 싶다라는 것이 막연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무서운 것이 없어지고, 주변의 것들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면서 그저 떠나고만 싶다. 지면에서 자꾸 둥둥 떠 올라가는 나를 끌어내려주는 엄마, 그래 이렇게 대리만족하면 되지. 그런거지.

 

"정이란 보이지 않게 계산된 이익의 가시적인 산출량인 것이다."

 

"상처에서 염증이 걷히며 단단하게 응결되는 비극의 자긍심을 모르는 사람이다."

 

"식초병 속의 식초가 본래의 신맛을 잃어버린 것같이 아내가 사라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껍데기만 두고 사라져버린 섬뜩한 느낌. 그걸 뭐하고 해야 하는지. 오래된 포도주의 맛이 사라진 것처럼. 신맛이나 변질이나 부패가 아니에요. 오히려 천이 퇴색한 것과 비슷하죠. 거기 있지만 그것의 성격 일체가 사라진 공허한 느낌 말이에요."

 

"그리고 사랑은 없고 사랑하지 않고는 덮을 수 없는 남루하고 추운 삶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인연의 순리에 비하면 이성도 주관도 객관도, 지식도 경험도 미망속의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

 

"믿을 것이라고는 인연을 느끼며 다가오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성실과 겸허함뿐이다."

 

"인생도 그래. 다 지어내는 거지. 사랑도 다 지어내는 거야. 하지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일이지."

 

"그래도 찾으려 하고 알려고 하니 고마워요.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사람은 견딜 수 있다고 하잖아요."

 

"내 몸속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실이 살갗을 뚫고 나오는 듯 아픈 숨소리였다."

 

"살기 위해 떠나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그냥 그 사람과 살다가 한순간에 죽었어야 했다고요."

 

"위로받을 길 없이 병든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길을 잃은 사람들, 기억을 잃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절망한 사람들은 시간의 바깥에서 숨을 쉰다."

 

"그리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그 곳에 있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