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가볍게 설레면서 읽은 소설이다. 내가 아는 지인에게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의 하나코라는 캐릭터가 멋있다며 한 번 읽어보라고 빌려 준 뒤, 그 분이 다 읽고나서 그 책을 돌려주며, 그 옆에 이 책을 끼워, 나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 준 책이다. 이 책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거라며. 사실 끝부분에 오기 전까지는 책의 내용은 굉장히 재미있었음에도, 내가 원하는 여자주인공은 아냐라는 마음이었는데, 그러면서 혹시나 고를 버리고 자기를 찾는다면 그러면 약간은 인정 해 주지 이런 마음도 들었다. 역시나! 끝에는 고를 떠나는 노리코... 뭔가 김빠졌다. 자아가 강한 여자들은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문제야. 연애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한 지인이 그랬다. 남자는 God Complex가 있어서 여자의 어떤 부족한 부분은 메워주고, 그 메워줌으로 인해 여자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한다라고.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벽을 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약점을 보여주고 기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이 쉽지!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너도 별 수 없구나라며 나를 버리고 떠날 것 같다라는 공포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 인생사가 참 어렵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노리코와 고의 사이가 부러웠다. 노리코에 대한 고의 사랑이 더 컸기에 그럴지도. 자신에 대한 고의 사랑을 받다가도 틈새를 찾아내 그 주변에 실타래를 풀어버려 더 큰 구멍을 만들어버리는 노리코에게 내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

 

"이 남자에게 한때 반해서 얼굴도 어깨도 손발도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갈망했었지. 그랬던 것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옛날 노래처럼 더딘 추억의 씁쓸함이 있는 만큼, 나의 마음을 그렇게 변화시켜버린 시간이란 것에 대해, 나는 감개무량함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나는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는 감동을 보이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다시 말해 단순한 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일수록 좋았다."

 

"나는 고로에게 고백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순진한 마음은 남아 있지 않다. 단 한 번의 키스로 평생 마음에 가시가 박힌 듯 사는, 숫처녀같은 충실감은. 남아 있는 건, 언젠가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다고 막연히 느끼는 슬픔뿐."

 

"브리짓 바르도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조용히 혼자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 행복은 혼자 살 때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여자 혹은 남자와 언제까지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고는 모르는 걸까?"

 

"그래도 종이는 허무할 정도고 너무 쉽게 타버렸다. 과거란 이 얼마나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인간이 자칫 잘못된 병에 걸리면 금방 죽는 것처럼, 아름다운 시집도 곤란한 일기장도 허무하게 금방 연기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정념의 기억은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고 태워지지도 않고 소실도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량감으로 묵직하게 인생의 짐처럼 매달려 있다."

 

"하지만 고에 의해 나의 성이 소실되었다는 느낌은 언제까지고 가슴속에 맺혀서 지워지지 않았다."

 

"'우연이 꽤 잦았습니다.' '정말.' '그런가 하면 1년이고 2년이고 못 만나기도 하고. 그런 게 재미있죠.'"

 

"진심의 목소리는, '일단 말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게 되고, 그때부터 끝없이 술술 나오는 게 아닐까요?' '분명, 한순간 한순간을 이어 맞추는 것에 지친 거겠죠?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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