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검은 물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호숫가를 맴도는 적당한 습기에 취해서 한순간 저도 모르게 생각하기를, 자신은 여기까지이나 아이는 어쩌면 어딘가에 맡겨져서 무사히 살아갈 수도 있으리라는 거였다. 그러다가 곧 세상에 홀로 남을 이 아이가 겪게 될, 종류와 정도를 가늠 못할 폭력과 곤궁을 떠올렸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공상이라도 그것만큼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며, 어느 쪽이 더 가혹하고 비참한 일인지를 저울질하다가 결국 이 아이에게 삶이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늘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마음을 정했다."
"곤은 자신이 언제부터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살아왔는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비좁은 세상을 포화 상태로 채우ㅠ는 수많은 일들을 꼭 당일 속보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 없고 속도를 내면화하여 자기가 곧 속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아다지오와 같은 삶,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서으이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는 삶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붙은,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임의의 이름 같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 있었고, 살아 있는 건 언제 어디서라도 그걸 부르는 자에 의해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었으며, 곤에게 의미 있는 건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또는 눈부시게 살아 숨 쉬는지였다."
"강하는 평소 집에서 노인에게 하던 대로 의사 앞에서도 사복개천이었지만 의사는 그런 태도에는 익숙한지 혀를 한 번 찼을 뿐이었다."
사복개천 (司僕-川, 발음:사복깨천) 사복시의 개천이 말똥 따위로 매우 더러웠던 데서, 몹시 더러운 물이 흐르는 개천을 이리는 말.
사전의미는 dic.naver.com에서 발췌
'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시고 (0) | 2016.10.29 |
---|---|
내 남자가 저리 입었으면 (0) | 2016.10.29 |
김려령 "가시고백" (0) | 2016.10.25 |
통영 2016 (0) | 2016.10.22 |
김별아 "채홍" (0) | 2016.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