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반복되는 상징--양 사나이,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십대 소녀, 모든 것이 완벽한 남자 등--들이 등장하는데도 역시나!라는 감탄사를 읊조리며 책을 읽게 만드는 작가. 이 정도의 급이 아니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하나 고민되게 하는 작가. 읽다보면 부재로 인한 허무감을 같이 느껴버리게 된다. 남들은 다 있는 것 같은 안락한 삶이나 연인, 혹은 배우자, 이상, 나한테는 그런게 부재해있어라고 느끼면서 허무함에 빠져버린다. 죽음조차 담담하게 다루기에 죽음의 써늘한 손을 잡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은 성급한 감이 있었지만, 오랫만에 잘 읽은 책이다!
"내 방에는 두 개의 문이 달려 있는데 하나는 입구이고 하나는 출구다. 서로 바뀔 수는 없다. 입구로는 나갈 수 없고, 출구로는 들어올 수 없다. 그건 뻔한 일이다. 사람들은 입구로 들어와 출구로 나간다. 들어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나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어쨋든 모두 나간다. 어느 누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기 위해 나갔으며, 어느 누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나갔다. 어느 누구는 죽었다. 남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부재를 항상 인식하고 있다. 사라져간 사람들을. 그들이 입에 담은 말들이랑, 그들의 숨소리랑, 그들이 읊조린 노래가 방의 이 구석 저 구석에 먼지처럼 떠돌고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난 지금 그대를 잃어버리려고 해.'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까, 나는 정말 슬퍼졌다. 정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따금 그럴 때가 있다. 무엇인가 하찮은 일이 내 마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 건 만성이 된다고. 일상생활에 파묻혀서 어느 것이 상처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야.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있지. 상처라는 건 그런 거야. 이거다 하고 끄집어내어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건 대수로운 상처는 아냐.""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라고 나는 말했다. "이야기 할 것이 많을 때엔 조금씩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은 거야.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어찌어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러한 마음의 떨림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 무엇을 찾아야 좋을지 알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 나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사물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기묘하게도 인간에게는 각기 절정기라는 게 있다. 거기에 올라가 버리면, 다음에는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정기가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괜찮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분수령이 닥쳐온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천재는 매우 희귀한 존재입니다. 일류 재능이라는 건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에요. 천재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은, 천재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겠죠.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혹독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자아를 바늘처럼 찌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른이다.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적어도 처음으로 대면하는 상대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다."
"하지만 배워.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결심하지. 그래도 똑같은 실수를 두번씩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왜 그럴까? 간단해. 왜냐하면 내가 어리석고 불완전하기 때문이야. 그런 때에는 역시 약간은 스스로를 혐오하게 돼.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세 번은 저지르지 않으리가고 결심하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지. 조금씩이지만 그래도 나아지는 건 분명해."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걸 소중하게 하면 돼. 그게 죽은 이에 대한 예의야.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어. 남아야 할 것은 남고, 남지 않을 것은 남지 않거든.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줘.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걸 네가 해결하는 거야."
"정말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비참하게 혼란에 빠지고 힘겨운 일이야. 의미가 없는 부분이 너무 많고.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런 게 없으면 잘 살아갈 수 없어."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라지는 거야. 우리는 모두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이동함에 따라 언젠가는 사라져버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사라질 때가 된다면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질 때가 올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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