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이 담긴 소설이라는 표지의 문구 때문에 골라 들었다. 실연의 아픈 정서가 필요했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에 뭔가 일침을 가해줄만할 내용이길 바라고 읽기 시작했다. 8년간 동거했던 남자친구가 어느 날 문득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다른 여자가 마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여자는 담담하게 받아 들인다. 어느 날 남자친구의 마음에 들어 온 그녀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온다. '하나코'라는 이름의 남자 친구의 그녀. 여자가 묘사하는 하루코를 따라가다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나코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한 모습인채로 많은 생각 없이 제 멋대로의 삶을 이어가는 그녀. 무엇인가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지만 어디로 도망치는지, 무엇을 위해 도망치는지 어느 하나 분명하지 않았던. 옭매여 있지 않아 언제나 떠날 수 있다라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죽음마저도 자연스러운 도망이라는 느낌.

 

"다케오가 내 곁에서 없어진다. 그것이 사실의 전부였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상처 받았는지 모른다."

 

"'어서 와.' 저울에 단 것처럼 이전과 똑같은 분량의 어서 와였다.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다케오는 뭘 하고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다케오도 쓸쓸하다고. 어린애 같은 고독. 아무와도 나눌 수 없는. 다케오는 그래서 이 집을 나간 것이다."

 

"나는 싱긋 웃었다. 나는 이 사람을 아주 좋아했었다.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안 나지만, 아주 좋아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새롭게 좋아할 수 있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계속 도망치고 있다고 했지, 무엇에서 도망치는 건데?' 묻고서 바로 후회했지만, 한 번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그냥 도망치는 거야.'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목소리로 하나코는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서, 그냥 도망치는 거야. 이 게임이 빨리 안 끝나나, 늘 그런 생각하면서 말이야.' 게임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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