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9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나.'
 
그때 자신을 위해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었고, 인생이 예정 속에서 그토록 간단하고 쉽고 평범한 것인 줄로 알았다. 고모할머니가 해준 무섭고 슬픈 이야기들은 먼 곳의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불행이거나, 지어낸 이야기로만 행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이야말로 이 삶 너머에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몇 번이고,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삶을 넘어섰을 때에야 스스로 수락하는 행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납득하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사람들은 연인들에게 그 일을 가장 궁금해 한다.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라는 이름의 자연성인가, 혹은 서로가, 아니면 둘 중 한 사람의 의지가 개입되었는가, 사물이나 사람, 혹은 공간이건 일이건, 어떤 매개가 있었는가, 혹은 오리무중의 우연인가, 그렇다면 몇 번의 우연인가? 연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시작에 필할 수 없었던 운명적 키를 앞세우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와 타인들에게 승복시킬 신성한 가치와 의미가 생기니까. 그리고 모든 만남은 궁극적으로 연인들이 만족할만한 봉인된 밀의로 가려져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간의 분석은 어떤 지점 이상의 심층적 인과 아래로는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뒷모습이 보이고 옆에서 다른 옆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외부에서 내부를 보아 버리고 아래에서 윗면을 보며 위에서 바닥을 보는 사차원의 시선처럼. 돌이킬 수 없는 전부를 보아 버렸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까. 
 
남녀의 만남이 내포하는 사랑의 전조와 사랑과 사랑의 후반부와 이별이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정도는 혜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랑이란 혜규처럼 영혼에 동창을 앓는 사람들의 질병이었다. 그들은 표피만 껍질이 벗겨지도록 비벼대다가 쉽게 실망하고 더욱 헐고 얼어붙는 영혼을 펄럭이며 영영 해결되지 않는 허기를 안고 제 골방으로 돌아갔다가 해가 바뀌고 바람이 달라지면 다시 영혼의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외출하곤 했다.
 
"욕망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놀라워. 무엇일 것 같아?" "Desiderare. 이 라틴어는 별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는 뜻이야. 놀랍지? 욕망의 원래 뜻은 사라진 별에 대한 향수이며 그리움이야. 사라진 별, 그건 별이 인간의 조상이고 고향이라는 의식의 근원이 욕망이라는 말속에 있는거야. 모든 욕망은 향수인거지.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을 욕망할 수는 없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실은 상실한 것에 대한, 말하자면 소유한 경험에 대한 향수라는 말이기도 해. 과거에 가졌던 것을 우린 욕망하는 거야."
 
"자신의 사랑을 알기란 정말 어려워. 스스로 말이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도 정말 어려운 거야. 그 다음엔 그 사람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도 어려워. 게다가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는 건 기적이야. 하지만 여러 겹의 단계를 통과하면서 난 자신을 믿게 되었어. 첫눈에 빠져드는 사랑을 믿지만 동시에 사랑은 삶 속에서 단련되고 깊어진다는 것도 알아. 사랑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많은 경험들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실제로 행동하겠구나.'하는 확신이 왔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어. 그건 혈관을 따라 혈액이 아니라 빛이 모여들듯, 내부로 흘러 들어온 뚜렷하고 강렬한 확신이었어."
 
"사랑하는 연인들이란, 무슨 일이든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악어도 먹을 수 있고, 살인을 할 수도 있고, 산채로 무덤에 함께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어. 그들은 타인들의 납득을 필요로 하지 않아. 사랑의 범주 안에서는 도덕과 부도덕의 제도적 구분도, 선과 악의 사회 윤리적 구분도, 심지어 행복과 불행의 세속적 가치조차 무의미해. 왜냐하면 때론 더 나쁠수록, 더 위험할수록, 더 불행할수록 사랑은 더 강렬하게 증명되거든. 난 이제 그걸 알아."

---11월 16일
늦잠 잤다. 월요일인데 운동을 가지 않았다. 주말에 체력 소모가 많았는지, 너무 힘이 들어 그냥 누워서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몇십장 안 남아서 다 읽어버렸다. 책이 너무 좋아서 천천히 읽으려고 꽤 노력했었는데. 나 조금 바보같다. 소설책을 읽으면 등장인물에게서 나를 찾으려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굴곡이 많은 주인공이나, 그 주변인물들이 나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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