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 읽다가 다시 돌아오니 괜찮네 나름. 방바닥에 잔뜩 쌓인 무라카미 하루키들을 책장으로 전부 집어 넣기 위해 당분간은 무라카미 씨에게 집중해주기로 했다. 무라카미 씨는 좋겠어! 당분간 나의 관심을 듬뿍 받을테니. "양을 쫓는 모험"은 또 상징이 남발되는 류의 이야기다.문득 날라 온 친구의 편지에서의 부탁으로 인한 양떼가 있는 사진을 광고에 사용하면서... 이 쯤이 이야기의 중심일 듯. 상징 따위는 이제 지겨워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으니,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무라카미의 천재성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지하철에서 열심히 책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턱 막혀 책을 덮었다. 네즈미가 죽었다니!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양을 삼킨 채 죽어버린 네즈미. 죽음이 그려지는 느낌이 싫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싫었다. 가슴이 또 먹먹해져버려서 하루종일 우울했다.

 

"결국 그녀가 내게서 찾던 것은 다정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기분이 묘해진다. 어쩌다 공중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손을 짚은 것처럼 슬퍼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 자신도 아직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이야.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되도록 공평하게 파악하고 싶거든.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현실적이 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

 

"한 마리의 당나귀가 좌우에 같은 양의 꼴을 놓고 어느 쪽부터 먹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굶어 죽어가는, 그런 종류의 비애가 그 건물을 감돌고 있었다."

 

"고맙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내던져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네. 이 기분은 말할 수 없이 근사해. 내던질 만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 정도지."

 

"고맙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내던져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네. 이 기분은 말할 수 없이 근사해. 내던질 만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 정도지. 나를 내던진다는 생각도 그다지 나쁘지 않군."

 

"이제는 아무도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도 내가 찾길 원하지 않는다."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야. 무슨 뜻이냐 하면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 어떤지, 그걸 잘 모르겠다는 거야. 아이들이 성장하고, 세대가 교체되고.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지? 산을 더 허물어서 바다를 메우고. 더 빨리 달리는 차가 발명되고 더 많은 고양이가 치여 죽어. 그뿐 아니겠어?"

 

"그러나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는 이미 새로운 규칙이 세워져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음악은 사상만큼 기억 속에서 퇴색하지 않는다."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일이라면 특별히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걱정거리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자네는 이미 죽은 거지?' 네즈미가 대답할 때까지 무서울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불과 몇 초였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긴 침묵이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래'라고 네즈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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