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만큼 사회적 동물이라는 관점에서의 인간으로서 힘든 일이 있을까? 어울려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리에서 돋보이고 싶어하고, 무엇 하나라도 다른 이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과시해야 하는 것, 그 것이 어찌보면 무리를 지어 사는 종족의 특성 아닐까? 다른 이가 나를 곁에 둘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인 것 마냥 끊임 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심지어 성형까지 하는 것이겠지.

이 책은 나름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준 책이다. 책의 큰 이야기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못남의 인정이라는 것이 나한테 뼈저리게 다가 온 책이다. 2010년부터,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 찾아 온 자신감의 붕괴. 내가 하는 일 따위는 누구라도 대신할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이직. 잘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인정 받지 못해 머릿 속을 맴돈 자괴감이라는 단어. 자존감의 상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족함과 나약함.

소설의 여주인공은 자신이 못생긴 것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 들이며 부당하다고 느낄만한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항상 자신의 타고나서 어쩔 수 없는 부족함으로 인해 주변의 무시와 핍박을 받아야 했던 여자는 남자가 주는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 버릴까 두려워하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남자를 떠난다.

사실 나는 못생긴 여자는 아니라 외모에서 받는 부당함보다는 이득이 더 많았기에 처음에는 소설이 그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못생긴 것에 대한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냐!따위의 생각을 했을 뿐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 이상 표면적으로 드러 난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개인의 부족함이라는 것과 그에 대한 인정 및 상실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요새 내가 겪고 있는 정신적 공황 상태의 문제가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깨달음을 얻었다.

이 것이 바로 책을 읽는 즐거움인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면 지고 가야 하는 책임감인가 싶기도 하다. 인정하고 나니 찾아오는 평안감.

(그래! 나는 부족한 여자야. 풍만 많아서 허세를 부렸지만 결국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야! 인정 받고 싶었지만 스스로 인정 받을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모른척 하고 싶었던 거지!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더 이상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말자.)

 

"겨울은 많은 것들의 이름을 뺏어간다고 눈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하는 나무들이 서로의 손을 포기한 채 불확실한 어둠 속에서 떨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래서 서로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다보탑으로부터 그런 얘길 건네들은 석가탑처럼, 그녀는 표정 없이 커피 잔의 손잡이를 매만지기만 했다. 분명 우리보다는 탑들이 알프스에 오를 확률이 높을 정도로 우리는 가난했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사막의 바람처럼 우릴 휩쓸고 지나갔다. 헤어진 모래처럼 서로를 찾을 수 없다면, 다시 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내면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귀찮지 않다면 하나만 더 물어도 될까? 그럼요.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주고 싶은 거니?"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 돼. 바로 나 같은 인간 때문이지. 스스로의 필라멘트를 아예 빼버린 인간...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인간...그래서 난 불합격이야. 나에게 세상은 불 꺼진 전구들이 끝없이 박혀 있는 고장난 전광판 같은 거야."

 

"사랑은 분명 바보들만의 전유물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 바보가 될 기회를 박탈당한 인간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상 위에는 유서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한 한 줄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한다.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자살을 시도한 것과 자살에 실패한 것엔 어떤 차이가 있으며... 살기 싫은 것과 죽지 못하는 것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그렇게 밝았던 사람의 이면에 그런 어둠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점점 두려움으로 변해갔습니다. 마음속 깊이 어둠을 지닌 인간은... 결국 그 어둠을 이기지 못하는 거구나, 그런 두려움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저의 전부가... 보이지 않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당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던 방안의 풍경과 흐트러진 이불이며 그런 사소한 사물들과 베갯잇에 떨어진 몇 올의 머리카락마저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매일 아침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떠나왔습니다."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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