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쏟아지는 일의 양을 감당할 수 없어 미쳐가던 중, 내가 너무 사랑하는 배우 손예진의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영화인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냅다 극장으로 달려갔다. 평일 자정이 지난 후에 극장에 있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듯. 극장을 혼자 전세낸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백야행은 사실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제목이다.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로 나왔다고 내가 또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나온다고 해서 꼭 봐야지 라고 생각은 했었던. 그러나 다행히 일본 드라마나 영화의 잔재가 머릿 속에 없었기 때문에 손예진이라는 배우만이 아닌 영화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손예진이 좋아서 그녀가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를 보긴 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전까지는 영화의 내용이나, quality보다는 손예진 자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줄거리는... 생략. 머리 아프다. 그러나 내용의 상당 부분은, 혹자는 고정관념이라고 하겠지만, 일본색이 짙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그런 일들이 줄거리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특히 사랑하는 두 남녀가 평행선에서 계속 존재하는 이런 내용은 절대 일본색이라고 생각한다.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관계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인연.

역시 영화에서 손예진은 예뻤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쁘기만 한게 아니라 처연했다. 손예진도 연기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하지만, 난 그녀의 영화를 보면서 그녀가 연기를 못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차라리 그녀가 선택한 영화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만 보여주면 되는 영화에서 그녀는 딱 필요한 만큼만 보여줬으니. 굳이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영화가 아닌 곳에서 필요한 만큼의 연기를 한 그녀에게 연기력을 말하기란 어려울 듯. 백야행에서는 그녀의 연기력이 정말 잘 보여지는 듯. 특히 나체로 의붓딸을 끌어안으며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는 연기자들은 너무 괴롭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책의 내용이 재미있다라는 이유 하나로 줄거리와 동화가 돼 허우적거리는데, 연기자는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지내는 것이다. 단순한 감정이입의 문제가 아닐 듯. 그리고 손예진은 착하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femme fatal이미지가 투영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런 손예진의 느낌이 너무 잘 살아났다.

일부러 포스터 사진을 다 받았다. 포스터가 영화의 상당 부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손예진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영화의 두 남자 주인공 한석규, 고수. 특히 한석규는 역시 제대로 된 배우이다. 그의 연기는 결코 억지스럽지 않고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고수는... 글쎄 나의 관심밖이다. 백야행... 흑백의 대비는 고수, 한석규 vs 손예진일 듯. 하얗다고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까맣다고 더러운 것도 아니다.
14년 전 일어난 한 살인 사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고수는 어둠 속에서 손예진을 지켜주는 역할이랄까, 아니면 손예진을 위해 어둠 속에서 머무른다고 해야 할까. 살짝 직업이 나타나기는 한다. 웨이터를 가장한 호빠 기도.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것은 조연들의 어울림으로도 판단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모든 조연들이 다 이유가 있다. 즉 억지스러운 캐릭터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배우 이민정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영화 속에 있어야 할 이유가 너무 분명해서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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