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동시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Understanding Poetry"를 읽고 있다. 확실히 Understanding Poetry는 읽고 이해해야 하는 책이라 진도가 안 나간다. 그래도 꼭 읽어내고 싶어서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찾아낸 '"태엽 감는 새", 총 네 권짜리다. "태엽 감는 새"는 무라카미를 좋아한다는 지인이 최고라고 칭찬하길래 은근히 기대했건만 요새 컨디션 탓인가 즐거이 읽히지는 않는다. 같이 여행 간 친구에게 차 마시는 타임에 1권을 빌려줬더니 다 읽고 나서 하는 말이 '번역이 이상한 것 같아'였다. 짐짓 잘난 체 하며, '번역은 어쩔 수 없어, 번역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받아들여지지 않는거야'라고 잘난척을 했건 만, 진짜 번역이 이상하다. 국어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단어를 번역해내는 번역가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는~

 

"누군가와 관계하는 것으로 인해 오랫동안 감정적으로 혼란해지는 일은 나에게는 거의 없다. 불쾌한 생각을 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초조해한 적은 물론 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나 자신의 존재와 타인의 존재를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도록 구별해두는 능력이 있다. 즉 나는 무엇인가로 불쾌해지거나 초조해지거나 할 때 그 대상을 우선 나 개인과는 관계없는 어딘가의 다른 영역으로 이동시켜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됐어, 나는 지금 불쾌하거나 초조하다. 하지만 그 원인은 이미 여기에는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검증하여 처리하기로 하자고.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동결시켜버리는 것이다. 나중에 그 동결을 풀어 천천히 검증을 해봐도 여전히 감정이 혼란해져 있을 때도 간혹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대개의 것은 독기가 빠져 무해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조만간 그 일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오."

 

"저는 창녀에요. 예전엔 육체의 창녀였지만 지금은 의식 속의 창녀에요. 저는 그냥 통과되는 것이랍니다."

 

"그녀는 되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 지금도 멀고 낯선 거리에 혼자 서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왠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때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하여. 깊은 상실감 같은 것에 대하여. 내가 훗카이도에 가 있는 동안 얼마나 자신이 고독했는지에 대하여. 하지만 그러한 고독 속에서 밖에 그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하여."

 

"그래도 이따금 외로움이 마음을 세차게 찔러댔다. 마시는 물이나 들이마시는 공기마저도 길고 날카로운 바늘을 지니고 있고, 손에 잡히는 책갈피의 모서리가 마치 얇은 면도날처럼 하얗게 빛을 내며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새벽 네 시의 조용한 시각에는 고독의 뿌리가 조금씩 자라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일 내게 뭔가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잃어버릴 만한 게 없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손을 뻗치면 무엇인가가 만져지고, 그 무엇인가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 그것은 멋있는 일이었다. 나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감촉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솔직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때때로 엄청나게 무서워져요.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나는 외톨이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모든 곳으로부터 500킬로미터 정도 멀리 떨어져 있고, 주위는 캄캄하고, 어느 쪽을 봐도 앞날의 일 따위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정말로 큰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지는 거예요."

 

"지금의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사람이란 여러 가지 이유로 변하게 되며, 어떤 경우에는 못쓰게 되어버리죠. 내가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에요.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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