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전경린 다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이나, 우울함의 표현이 이상할 정도로 짙어서 읽고 나면 한참 힘이 든다. 문장 안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 아니라--사실 문장의 우울함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야기에서 묘사되는 분위기나 상황이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로 우울하다. 특히 이 작가가 묘사하는 죽음은, 내가 피해야 하는 치명적인 것이다. 죽음에 대해 읽고 나면, 자꾸 공감이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죽음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너무 큰데, 신경숙은 그 죽음이라는 것을 내가 갖고 있는 죽음과 동일한 주파수로 풀어낸다. 그 공음이 무서워,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당분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모르는 여인들"은 단편집이다. 문장이 예쁘지는 않아서 받아 적고 싶은 부분은 별로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성문 앞 보리수'에서 주인공 S와 경의 친구인 수미의 죽음이었다. 수미는 현실감각을 갖고 집이 있어야 된다며 억척을 부리고 마침내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한다. 입주하던 날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졸려서 방에 들어가고, 남편과 본인이 처음으로 돈주고 산 와인을 한 잔 한 후에 일어나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베란다 쪽으로 가서, 남편에게 나 갈래요. 한 마디를 남기고 뛰어 내린다.

'모르는 여인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고, 여행지에서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대신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며 옛날 일을 떠올리고 웃을 수 있었다. 내게는 영원히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평화가 거기 있었다. 다시 한 사람을 향한 격정 속에 빠져서 매 순간을 휘둘리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을 욕심내는 일은 격정만 주는 게 아니라 절망을 함께 준다. 그래서 가차없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버리도 한다. 그 격정과 절망 속에 다시 나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채가 내 곁에 있었던 이십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행복하다고 여겼던 적이 별로 없다. 매일매일이 막연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채를 거기에 두고 도망쳤던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뜨기 싫어 밤에 아예 잠을 자지 않은 날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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