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맛집놀이 첫 식당이다.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대안스님이 나와 사찰 음식을 소개했다고 우리 유여사가 갑자기 필이 확 꽂혀 가자고 한 곳. 워낙 음식 욕심이 없는 유여사가 뭔가 먹어보자고 하실 때는 그건 무조건 먹어야 하는 음식인 것이고 가야하는 식당인 것이다.
발우공양은 3일전 예약이 필수인 곳이지만 다행히 테이블은 빈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일 저녁 식사 예약이 가능했다. 방쪽 자리를 보니 좁고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미리 예약했을 때 창가쪽 자리가 가능하다면 데이트 장소로도 괜찮겠다 싶었다. 주차가 가능하다고 해서 나의 뎅뎅이를 끌고 갔으나 기계식 주차였고 (나의 뎅뎅이는 소울인데 가로 넓이가 넓어 기계식 주차장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간혹 있음), 주차담당하시는 아저씨께서 자리 없다고 친절하게 길에다 그냥 세우라고 알려주셨다! 우리 뎅뎅이 오랜 기간 세차 안 했기 때문에 정말 더러웠다. 그래서 길에다 세우라고 하신 거겠지! 아저씨가 불친절하시거나 그런 건 아니었으나 길에다 세우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찝찝하기는 했다. 한정식이라 시간이 꽤 걸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별 탈은 없었다!
메뉴는 10합 25,000원 12합 36,000원 15합 53,000/75,000원 이고 세금은 별도다. 뭐 이렇게 비싼가 싶어 속으로 끙~소리가 났으나 이왕 안국동까지 나온 것, 그냥 먹어보자 싶어 15합 53,000원짜리 메뉴 시켰다. 요새 채식주의관련 트위팅을 열심히 하고 있던 터라 다양한 메뉴에 대한 호기심도 워낙 컸다. 일단 총평은 음식이 향긋하고 가벼워 먹으면서 아 건강해지고 있어 이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라는 것. 집에서도 누가 항상 이렇게 해주면 채식 정말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다.

1. 기본세팅: 내가 좋아하는 질그릇 앞접시에, 젓가락질 못하는 나에게 딱인 가벼운 나무 젓가락과 수저.

2. 능이버섯 죽: 능이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고 간이 거의 안되어 있어, 식전음식으로 딱이었다.

3. 연뿌리샐러드: 연뿌리 및 샐러리, 당근, 단감, 새싹채소 등이 겨자소스와 버무려져 있는데,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계속 땡겨서 그릇 치우지 않고 옆에다 두고 조금씩 계속 먹었다.

4. 삼색전: 개인적으로는 제일 별로 였던 음식. 사찰음식임에도 간이 진했고, 이렇다 할 재료의 식감이나 고유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여기서는 훅 흥미가 떨어졌다. 유여사가 아침에 만들어준 해물전이 더 맛있었다! 채식은 아니지만...

5. 만두, 숙성두부, 쌈밥: 만두에서는 버섯의 향이 은은히 좋았고, 쌈밥과 두부에서도 특유의 향이 있었는데, 사실 정확히 어떤 향인지는 모르겠다. 쌈밥은 하나 더 먹고 싶을 정도!

6. 능이초무침과 두릅밀전병: 둘다 깔끔한 맛. 먹으면서 혀 안에 아 건강해... 이런 느낌!

7. 건강탕과 산야초효소: 이름이 정확히 이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탕을 먼저 먹고 술 잔 같은데 담겨 있는 효소를 마시라고 서빙하는 분께서 알려주셨다. 산야초효소는 음료수 맛 같아서 몇 잔이라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 

8. 연근 밥과 연근절임: 음식에 정성이 많이 들어있어, 함부로 입에 넣고 막 넘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9. 콩고기 쌈: 절여져 있는 나물은 산마늘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 나물에 콩고기와 씨앗과 말린 무엇인가를 넣고 싸먹는데, 저 절인 나물의 맛이 강한 편이라 다른 맛은 그냥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이런 식당을 찾은 것이라 호기심 외에 굳이 콩고기를 먹어봐야 하는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 그러나 나물향은 최고! 

10. 산마구이와 장뇌삼: 산마구이는 유자청을 찍어먹는데, 생각보다 고소하고 유자청이 입 안에서 풍기는 향도 좋았다. 인삼을 좋아하지 않아 장뇌삼은 유여사님께 패스!

11. 버섯강정: 튀긴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무척 맛있게 먹었어야 하는 음식이지만 이때쯤 정말 배가 불러서 수저 들고 음식을 밀어 넣기가 버거웠다.

12. 건강탕: 들깨향이 향긋하고 안에 각종 너트류가 들어있었던 듯. 사실 들깨 칼국수의 맛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맛있게 먹은 들깨 칼국수집의 국물보다는 깔끔하다는 느낌 정도!

13. 오찬 및 미역국, 연잎밥: 연잎에 쌓여 있는 밥에서 나는 그 향기는 정말... 사실 배가 불러서 하나는 포장해왔는데, 다음 날 전자렌지 살짝 돌려서 먹어도 그 향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유여사님도 워낙 찰밥을 좋아해 그냥 먹는 밥은 꼭 찰밥을 해주시는데, 이 찰밥은 사실 그 질감이 확연히 달랐다고나 할까... 유여사님에게는 연잎이 없어서라고 위로는 했다. 찬도 맛있고, 미역국도 고소했다. 그러나 김치만은... 워낙 젖갈이 많이 들어 간 김치를 좋아하는지라 절에서 만든 김치는 내 취향과는 멀다라는 생각.

14. 후식: 식혜와 튀긴 야채 및 과일, 호박 푸딩, 그냥 깔끔한 휴식. 기름에 튀긴 음식이라 살은 엄청 찌겠다 뭐 그런 생각


'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재  (0) 2012.03.08
신경숙 "모르는 여인들"  (0) 2012.02.28
무라카미 하루키 "1Q84"  (0) 2012.01.31
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0) 2012.01.31
전경린 "물의 정거장"  (0) 2011.12.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