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체의 소설은 멀리 하는 나지만, 우연히 커피숖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치밀함에 빠져 들었다.
나의 나쁜 습관은 한 번에 다 섯권 이상의 책을 펼쳐 놓고 읽는 것. 어떤 책은 일주일만에 읽어버리기도 하지만 대게는 최소 몇 달을 걸려 책을 읽어나간다.
나는 plot을 즐기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나는 문체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문체를 즐기다 지루함에 책을 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plot이 필요하다. 이 책은 plot이 있는 책이다.
2월 4일 저녁에 1권을 끝내고 2권 시작 중인데, 천재성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단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조금 더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수학을 좋아해요.' 덴고는 그녀의 말끝에 물음표를 붙이고 그런 다음에 질문에 대답했다. '좋아해. 옛날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
"도대체가 이런 결함투성이의 계획이 잘 굴러갈 리가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살얼음을 밟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런 표현도 지나치게 순한 것이었다. 발을 얹기도 전부터 이미 얼음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사람이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녀는 곧잘 자문했다. 하나의 감옥에서 멋지게 빠져나온다 해도, 그곳 역시 또다른 좀더 큰 감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것은 움직일 필요가 없어. 움직이는 건 그 주위의 모든 것이지."
"폭력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 없고, 반드시 피를 흘리는 것만이 상처라고는 할 수 없듯이."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특히 시간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계는 지금도 재깍재깍 시간을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그걸로 시간을 살 수 있어요. 사려고 마음먹으면 자유까지도 살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자유, 그건 인간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리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아유미는 큰 결락같은 것을 내면에 안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 끝의 사막과도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물을 쏟아부어도 붓는 족족 땅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그뒤에는 촉촉한 기운이라고는 일절 남지 않는다. 어떤 생명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새조차 그 위를 날지 않는다. 무엇이 그녀 안에 그런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만들어냈는가."
"마치 진기한 이국의 나비를 보는 것 같다. 그냥 바라보는 건 괜찮다. 하지만 손을 대서는 안된다. 손을 대자마자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명을 잃고 본래의 선명함을 잃는다. 그리고 그것은 이국의 꿈을 꾸는 것을 멈춰버린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덜 녹은 동토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는 그 단단하고 차가운 심지와 함께 인생을 살아왔다. 그것을 차갑다고 느낀 일조차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이른바 상온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가 죽는다는 건 어떤 사연이 있건 큰일이야. 이 세계에 구멍 하나가 뻐끔 뚫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올바르게 경의를 표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구멍은 제대로 메워지지 않아."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각자 소중히 가슴에 품은 채, 끝까지 떨어져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언제까지고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몸의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자그마한, 하지만 소중한 발열이다.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다. 현실의 난폭한 바람을 받으면 훅 하고 간단히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고독했는지 아는 데는, 서로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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