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주말 일기는 주말 전부터 시작이다. 요 며칠 집에서 자꾸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생겼다. 쭈가 보내 준 소주가 있어서 그렇긴 하지만 계속 하다가는 알콜중독이 되겠다 싶어 멈춰야 할 것 같다. 뭐든지 혼자하는게 익숙해지는 건 나쁘지 않은 것일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한국 갔을 때 쭈랑 은하랑 먹태를 참 맛있게 먹었었는데, 그 것을 기억하고 쭈가 소주와 함게 보내줬다.
회사 동료인 카나가 주말 중에 부산을 다녀왔다며 빼빼로를 건내줬다. 오랫만이다 빼빼로데이. 엄청 기분이 좋아져서는 깔깔대고 웃었다.
드디어 텔레비젼 시청이 가능해졌다. 돈키에 가서 1200엔 정도 주고 여러 종류 중 가장 저렴한 안테나 선을 사왔는데, 별문제 없이 잘 작동되고 있다. 한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니폰테레비채널을 추천해줘서 주로 보고 있지만 역시 아침에는 엔에이치케이엔의 뉴스를 보게 된다. 간혹 한국 뉴스가 나오는데 뉘앙스가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말이 안되는 부정적임도 아니다. 합리적이라는 느낌. 한국에 있을 때 들어 왔던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회사에서 주워 온 일인용 야끼화로. 불이 약해서 생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 이미 익은 고기를 데워 먹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또 낼름 야끼토리 사와서는 명란젓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있는 나. 이 때까지는 특별히 나쁜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불길한 기운이 있었는지, 자꾸 불안해서 술을 마셨나봐. 이제와서야 그 불안이 뭔지 알았지만.
요새 피부를 위해 아침은 과일과 요거트로 대체하고 있다. 매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 하루 빼고 과일로 아침을 먹었다. 그 덕이라 그런지, 저녁마다 안주와 함께 술을 마셨는데, 살이 오히려 빠지고 피부 톤이 조금 맑아진 느낌이다.
여기저기 다니다 호르몬 야끼라는 가게를 많이 보기는 했는데 가보지는 않아서 궁금했다. 집앞에 하나 있길래 드디어 도전. 일본인이 주인은 아닌 것 같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주방도 중국인, 서빙도 중국인. 뭔가 일본 분위기 물씬 나는데 속은 기분. 그러나 맛은 괜찮았어서. 정 야끼토리가 지겹고 혼자 뭔가 먹고 싶으면 한 두 번 더 갈 생각은 있다.
호르몬 야끼집이었으니 우선 시로코로부터 시켜봤다. 돼지 막창. 네 가지의 다른 소스. 그냥 딱 그맛이고 타래소스는 너무 짜긴 하더라. 한 번 먹어본데 의의를 둘까 또 먹을까 모르겠다. 이런 음식들이 먹고 싶을 때가 있기는 한데 또 막상 먹으면 그 꼬리한 향이 싫기도 하고. 너무 왔다갔다하는 나란 여자.
시샤모는 슈퍼에서 사서 구워먹어 보고 싶긴한데, 귀찮아서 그냥 사먹음. 근데 신선하지는 않았던 듯. 역시 사서 한 번 구워먹어봐야 할 듯.
뭔가 더 먹고 싶어져서 그냥 소금만 뿌린 시로코로랑 카와 시켜봤다. 둘다 그냥그냥. 카와는 원래 자주 가는 집이 확실히 바싹 구워줘서 좋다.
매운 맛이 있길래 불막창 맛일까 싶어서 시켜봤는데, 확실히 매운 맛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냥 진한 맛이었다. 나쁘지 않지만 또 먹지는 않을 맛.
아사리 술찜. 이 안주가 국물 시원하고 조개도 신선하니 맛있었어서 기억에 남는 듯.
또 챙겨먹은 과일 아침. 예뻐져라 예뻐져.
그리고 엄마의 사랑 김치. 금요일 저녁에 도착한 김치 택배. 12키로라니. 12키로라는 문자를 먼저봐서 엄청난 양일 줄 알았는데 다행히 어마무시한 수준은 아니고 악!스러운 수준이었다.
냉장고 전체를 김치가 채웠다. 냉장고에 이제 아무것도 넣을 수 없다. 당분간 김치만 먹고 살아야 하나. 회사애들 좀 주면 되긴 하는데, 엄마가 힘들게 만든 거 굳이 주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악착같이 먹어서 없애야지 다짐.
이렇게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행복해하며 베프들과 카톡으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중에 나오푸미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은하의 검색질에 이 거지새끼의 결혼사진이 걸렸다. 멘탈붕괴... 오랜만에... 나도 그렇게 정조를 지키는 여자 아니라 바람둥이는 그래도 견딜 수 있는데, (사실 한 사람한테는 질리는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고) 유부남은 정말 아닌데. 난 결혼이라는 법적인 테두리에 묶일거면 그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라 주의라 정말 불륜만은 싫다. 결혼은 보통 아이가 따라 붙는 형식이라 더 싫다. 근데 나를 그 불륜의 대상으로 만들다니. 진정한 개새끼. 밖에 나가기는 그래서 혼자 소주에 물타서 두 병 원샷. 울기는 커녕 취해서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찌나 허무하던지. 근데 쭈의 말처럼, 내가 정말 몰랐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 그냥 오랜만에 외모나 하는 행동이 나의 이상형에 가까워서 조금만 의심했으면 알 것을 그냥 의심하지 않고 묻지도 않았던 것이지. 처음에 한 두 번 물어보고 난 불륜 싫어라고 했으니 괜찮아라고 한 건 나의 잘못. 그 새끼가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난 묻지도 귀찮게도 안 했으니. 난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보이는 것에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분명히 나의 잘못. 전에 잠깐 만나던 애가 바람핀 것을 알았을 때는 바람 펴서가 아니라 신실한 척 해놓고 뒤통수 치는게 싫어 그냥 그 앞에서 사라져버렸지만 이번에는 진정한 거짓말쟁이기에 그냥 넘어가기 싫었고, 그냥 넘어가면 나 스스로 이 남자를 다시 만나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까 싶어 와이프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나를 차단한 것 보면 메세지는 분명히 읽은 듯 하다. 그 새끼한테도 메세지 보냈다. 결혼 사진과 함께 fuck you라고.
그러고 나서 낮에 자전거타고 카와고에에 갔다. 아무 생각 하기 싫을 때는 자전거 페달 굴리면 좀 숨이 셔진다. 우리 집에서 30키로 떨어졌는데 로드아니어도 충분히 갈 만했다. 날씨도 좋고. 어쨋든 도쿄나 도쿄 인근은 공기가 좋은 편이라 자전거 타기에 더 좋다.
도착하자마자 간 커피숍. 커피욕심은 많아서 뭔가 엣지 있어 보이는 커피숍이 보이면 꼭 가고 싶다. 들어가서 라떼 주문하여 마셨는데 맛은 사실 그냥 그런 것으로. 분위기만 깡패. 라떼가 맛있으려면 에스프레소 맛이 진해야 하는게 그렇지가 않았다.
그 사단을 내고도 일요일 아침에 과일 챙겨먹은 여자. 남의 가정에 불화를 일으킨 것 같아 그 새끼 와이프에게 미안하지만 모르는 것보다 낫지 않나 싶다. 나도 속았으니까 너도 분명 속고 있을거야라는. 뭔가 폐인같이 술을 마시고 그래야 할 것 같다가 포기했다. 그러기엔 난 내가 너무 소중해버려서. 요새 다시 너무 건강해져서 새벽 5시면 깨어나고 있다.
늦은 아침밥도 먹었다. 새밥해서 김치랑만. 내가 없이 김장을 했는데도 김치가 너무 맛있더라는. 그런 가족의 끈끈함이 특별히 그리운 그런 날이어서 오히려 전화를 못하겠더라. 누구랑이라도 말을 시작하면 울 것만 같아서.
그리고 한국 친구들 만나러 우에노로. 역시 자전거 타고 갔다. 벌써 크리스마스를 준비할 그런 시즌인가보다. 이번에 역시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겠군.
우에노를 잘 아는 친구가 유명한 민츠카츠집이라고 하나씩 사줘서 먹어봤다.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라 난 시큰둥. 근데 줄이 엄청 길었다.
마찬가지로 그 친구가 추천해줘서 간 줄이 엄청 길었던 라면집. 근데 정말 여러번 끓여먹은 김치찌개의 맛이었음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일본에 너무 오래 살던 애가 추천해주는 맛집애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걸로. 난 역시 관광객 입맛인 것으로.
아티산 거리도 살짝 걸어주었다.
그대로 이어서 아키하바라까지 걸어서 부엉이 카페에 갔다. 만져볼 수 있었는데 너무 폭신한 느낌. 가까이에서 실제로 본 건 처음엔데 몇몇 애들은 같이 살고 싶을 정도로 예뻐서 놀랐다. 강아지같은 느낌도 있고 뭔가 쉬크한 느낌도.
다시 우에노까지 걸어가서 깡통의 추억이라는 식당에서 먹은 즉떡과 후라이드 치킨.
월요일인 오늘 아침, 갑자기 뽀미에게 연락이왔다. 꿈자리가 안 좋다며. 하여간 귀신이야. 카톡하다가 눈물 나서 화장실 가서 울어버렸다. 이 정도는 아파야지. 그래야 빨리 빨리 훌훌 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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