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단편집의 묘미는 짧은 이야기 안의 강렬한 여운! 가독성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계속 호불호가 왔다갔다 하는터라 이런 글을 쓰는 나로서도 부끄럽지만, 무라카미든 에쿠니 가오리든 일본 작가의 좋은 책을 만날 때면 나의 일본어 실력이 영어 실력정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마지막에 실린 "시나가와 원숭이"이였다. 이름을 훔쳐가지만 그와 함께 그 사람의 어둠도 함께 가져간다는. 번역서를 읽기에 글체가 주는 깊은 느낌을 받지는 못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물 혹은 현상 등을 묘사할 때 보여주는 의외성은 매우 신선하다. 1Q84의 영문판의 뒷표지에서 이런 글을 봤다 "Murakami Haruki is simply a genius" 인정!
'우연한 여행자'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사실 매우 흔해빠진 현상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요컨대 그런 종류의 일은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태반은 우리의 눈에 띄는 일 없이 그대로 지나쳐버립니다. 마치 낮에 쏘아 올린 폭죽처럼, 어렴풋이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아무것도 볼 수는 없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강하게 구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는 꼭 우리 앞에, 하나의 메시지로 떠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도형이나 함축된 의미를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레이 만'
"아가씨들과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방의 얘기를 잠자코 들어줄 것. 째, 입고 있는 옷을 칭찬해 줄 것. 셋째, 가능한 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줄 것."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무엇보다도 멋진 것은, 거기에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변화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아니, 변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높은 장소에 올라가면, 거기에 있는 것은 오로지 저와 바람뿐입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이 저를 감싸고, 저를 흔들어댑니다. 바람은 저라는 존재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저는 바람을 이해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로 결정하는 겁니다."
'시나가와 원숭이'
"생각해보면, 그녀의 인생에서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상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잠을 유도할 목적으로 제작된 저예산의 환경 비디오와 같은 것이다. 엷은 색조의 풍경이 그냥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비춰진다. 장면 전환도 없고, 클로즈업도 없다. 흥분도 없고 침울함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에피소드 같은 것도 없다. 복선도 없고 암시도 없다."
"질투의 감정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객관적인 조건 같은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 혜택 받은 입장이니까 다른 누군가를 질투하지 않는다든가, 혜택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질투를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몸에 생기는 종양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생겨나서, 이유 같은것과는 상관없이 자꾸만 넓게 퍼져나가요. 알고 있어도 막을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당신은 그 일을 의도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그것을 마음속의 조그만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뚜껑을 닫고, 괴로운 일은 생각하지 않도록, 싫은 일은 보지 않도록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안 좋은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 방어적인 자세가 당신이라는 인간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나베 세이코 "아주 사적인 시간" (0) | 2012.07.23 |
---|---|
서숙희 "비" (0) | 2012.07.13 |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0) | 2012.07.12 |
critical thinking (0) | 2012.07.08 |
Demarketing (0) | 2012.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