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가볍게 끝내야 했는데, 과하게 달려버리셨다. 도쿄 살고나서부터는 소주 마시는 자리만 가면 정신을 못차리고 마신다고 해야하나. 중간 중간 필름도 끊기고 많이 넘어지셨는지 팔꿈치 무릎이 다 까졌다. 회사애들하고 마셨는데 왜 이렇게까지 마셨는지. 자켓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침에 회사 친구가 가져다주더라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리가 무겁다. 그렇게 마셔대고 나서 주말을 버렸다는 기분, 아까운 내 주말. 전신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계속 누워서 보낸 토요일과 일요일.

누워서 내내 한 짓은 영화 드라마 보기. 먼저 본 것은 기생충. 전에 혼자 시도했다가 무서울까봐 못 보고 친구 끌고 온 김에 같이 봤다. 한국 영화 이제 정말 넥스트 레벨인 것 같다. 예전에는 뭐든 과하다는 느낌이 진했는데, 이 영화 깔끔했다. 혼자 사는 여자라 이 드라마 보고 나니 괜히 혼자서 방 하나 더 있는 집 사나 무서워지긴 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감동은 꽤 컸다. 조여정은 지금이라도 매력 포텐이 터져서 너무 다행이다. 예쁘더라. 비슷한 나이대의 여배우에 싱글이라 괜히 애정하는 배우. 그 다음 계속 본 것은 호텔델루나. 재미지더라. 일요일 밤에 마지막 방송인데 밤에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버려 마지막 방송은 못 봤지만 궁금함에 이미 결론은 찾아봤다. 여주 남주 모두 내 취향 아닌데도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봤다는 건 재미있었다는 것. 도깨비 때문에 전생과 오버랩되는 스토리가 뻔하다고 느껴졌고, 남주의 대사 처리가 내가 참 싫어하는 스타일의 말투였음에도 재미있어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스토리와 조연들의 명연기가 있었다. 청명으로 나오는 연기자 멋있어 드라마 보다 말고 검색도 해봤다.  

청소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지저분한 것이 아무렇지 않으면 견딜 수 있을텐데 지저분한 것은 싫고, 그렇고 청소하는 것도 싫고. 청소 때문에 꽤 짜증이 나 있던 참에 아마존에서 청소기 세일을 했다. 주문 후 토요일 아침에 배송이 와서 청소는 그 아이한테 전부 맡기기로. 걸레질도 나보다 잘 하는 예쁜 아이. 내 인생을 무척이나 편하게 만들어 줄 아이. 중국산 저렴이 버전 샀는데 시끄러운 것 말고는 만족도가 무척이나 높다. 다행이다.

데드라인을 정해놨기에 도쿄에서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해봐야한다며 후지산에 오르기로 마음 먹었다. 같이 가기로 했던 아이의 일정이 안되어 혼자 그냥 여행사 통해서 간다. 왕복 버스에 산장 가격 계산해보면 여행사가 싼가 싶기도. 

데드라인을 정해놓은 것 이 것이 약간 문제인 듯. 뭐든지 열심히 안 하게 된다. 일도 열심히 안 하고 친구도 열심히 안 만나고. 도쿄는 너무 좋은 도시지만 오래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지금 회사 친구들 특히 고맙고 애틋하지만 그래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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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한창 자기계발서 읽고 더 나아진 혹은 성공한 자신을 꿈꿔야 할 나이에 그저 소설만 읽었다. 대체적으로 여성 작가의 소설들. 내면을 계속 탐구하고 자아를 찾고자 하고 삶의 불편을 감수하고 다른 것을 해보고자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들. 깊이 빠져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냥 그렇게 깊게 깊게 동화되었다. 결혼을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장기적인 이렇다 할 연애를 해보기 전에 이미 남편의 바람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여인네의 아픔을 느껴버렸다고 해야 하나.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에 둘러 쌓여 결핍된 다양한 인간상에 대한 노출을 소설을 통해서 했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는 비록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도 상황의 저 쪽 끝에 있는, 보통은 만나기 힘든 인물상이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서른 언저리가 되면 어떻게 변할 거고 마흔 언저리가 되면 어떻게 될거다를 막연히 정해버렸는데, 그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 이후로 쭉 그랬다. 쉬운 길을 알아도 쉬운 연애를 알아도 그저 돌기만. 타인의 평가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올바르지 않은 것을 깨달은 연인에게는 더 집착했고 남들은 어렵게 어렵게 결정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상하리만치 차갑고 빠르게 결단을 내려버리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어디 한적한 국도 옆길에서 휴게소를 운영하며 우연히 그 곳을 찾은 사람들을 만나야지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연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나 사연을 만들기 어려워 스스로를 그런 사연이 있는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그냥 문득 가만히 앉아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오늘의 내가 싫은 것은 아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오늘의 나도 자랑스럽고 사랑한다. 그냥 그렇더라. 내가 이런 길을 스스로 선택했구나 하는 것. 결국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순간 순간 내린 선택의 결과라는 것. 그 선택을 하는 방향성이 조금 달랐구나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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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배도 안 고팠고 스트레스도 없었는데 갑자기 훅 땡겨 폭식. 배 가득 찬 채로 일찍 잠들어버려 위가 또 아파졌다. 그래서 주말 여기저기 놀러 다녔는데 음식은 조심함.  

토요일은 에노시마. 도착하자마자 줄 없길래 에그앤띵스 가서 브런치했다. 뭔가 열심히 먹고 싶었는데 역시 위가 아파서 포기. 그래도 치팅 데이의 의미는 살린게 밀가루랑 크림 잔뜩 먹었으니. 빵순이 아닌게 천만 다행.


에노시마는 예쁜 동네. 모래사장이 예쁘거나 물이 투명한 것은 아니어서 물에 들어가는 것에는 의미가 없겠지만 산책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오랫만에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일요일은 롯본기와 아자부주반 축제. 아자부주반 축제는 그냥 먹거리 포장마차의 연속이라 사람만 많고 별로였고 롯본기가 댄스 축제라 참여도 가능해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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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 때문에 독이 차올랐다. 일본에 오고 나서 예전에 조금씩 아프던 것들이 집중, 응축되어 몰아서 아프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노원철인 팀에서 운동도 꾸준히 하고 엄마가 식단을 잘 챙겨줘서 건강했었는데, 여기 와서는 몸이고 정신이고 엉터리가 되었다. 조금만 아파도 우울해지고 짜증이 극으로 달해 주변 사람들한테도 쉽게 서운해지는 듯. 사람이든 사건이든 조금만 멘탈을 흔들면 바로 멘붕상태도 되고. 

한국 돌아가야겠다. 아프면 최소한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또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듯. 여기서는 병원가면 괜찮다는 말만 알아듣고 그 앞뒷말에는 패닉. 중요해 보이는 한 두 단어가 안 들리면 그 다음부터는 들을 의지가 사라져버리는 듯. 

배움에 끝이 어디있겠어, 계속 공부해야지 하지만, 일본어 배워 뭐할까? 특히 한국 돌아갈거면 뭐하러 배우는 것일까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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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도쿄 엄청 덥다. 토요일에 애정하는 레이크타운 다녀왔는데 나의 정신병을 이길 정도로 더워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더워 버리니 시착을 도저히 할 자신이 없더라는. 자라홈에서 컵이나 살까 하다가 뭔가 고장내지 않은 한 생활용품은 더 이상 늘리지 말자 싶어 포기.
일요일 슬렁 슬렁 나무 늘보 놀이. 처음에는 도깨비로 시작했는데 공유가 너무 예뻐 (공유가 나에게 오빠인가 궁금해진다)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영화 남과여로 이어졌다가 괜히 화났다.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을 보며 남자는 다 저모양이라며. 지들 좋을 때는 말도 안되게 덤벼놓고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핑계가 생기는 것들이라고. 그러다 또 나는 안 그러나 생각해보니 욕할 자격이 못 되는 구나 했다.
전도연님은 연기신이신 듯. 미친 색기. 나도 저런 색기 좀 타고 났으면 남자들이 좀 많이 따랐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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