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3일
"아니나 다를까, 종지만 한 얼굴이 벌써 마음을 쓰이게 하는구나. 여자인물이란 눈길을 너무 붙잡아도 박복한 법이거늘."
그 무렵 진은, 마치 물에 뜬 한 송이 연꽃 같은 자족과 적요와 선량한 광휘에 감싸여 천지신명의 편애를 받고 있는 듯했다. 어린 처녀지만 그 빛으로 누구라도 무릎을 꿇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녀의 표정이 은은하고 동작이 곧고 깨끗하며 자태가 가늘지만 풍성합니다. 몸 안에 등을 견 듯 표정이 환하고 윤택한 흰 살결에 머릿결은 청실처럼 푸른 광택이 나며, 눈썹과 눈동자는 검고 입술을 붉으며 눈과 코와 입과 귀, 어느 하나 걸림이 없이 부드럽고 윤곽이 단정하면서도 안개가 서린 듯 오묘해 자세히 보려 하면 오히려 아련해지니 참 이상하지요. 인물이 이목을 끄니 공연히 남의 집에 오르내릴까 저어되기는 하지만, 행실이 반듯하고 오연한 데다 학문을 갖추었고 재력까지 겸비한 좋은 집안의 의젓한 장녀이니 천하의 규수입니다."
"하긴 지금 와서는, 친척이 아닌 친척이야말로 저 아이에겐 더 큰 괴로움일 테지요. 성미도 까다롭고 체질도 특이합니다. 워낙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지요. 마음먹는 그대로 몸이 따라가는데,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황 진사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대로 누운 채 오장육부를 가만히 정지시킬 수도 있는 체질입니다.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장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갔을 때 느낀 것인데, 환자의 몸에서는 사람을 혼미하게 하는 강렬한 향내가 납니다. 제 몸도 뜻대로 하지만, 남의 몸까지 뜻대로 할 것입니다."
"아씨, 이 방에서는 향기가 나오. 아씨가 없을 때는 연향같이 은은하지만 아씨가 자고 일어나면 연향이 깊어져 달콤하고 아련하고 몽롱해져요. 때론 어찌나 강한지 정신이 혼미하여 입이 헤벌어지고 침이 흐를 지경이라오. 간혹 이런 여자가 있다고 말은 들었어도, 참 신기하고. 아씨는 낭군님을 잘 만나야지 허술한 사내는 아마 명대로 못 살 것이오."
"곱다. 어미보다 더 곱구나. 네 어미 몸에서 나던 연향이 네게서도 난다. 참으로 퍽 닮았구나. 아련히 그늘진 검고 조용한 눈은 어미보다 영특하고 반듯한 이마엔 의젓한 빛이 어려 늠름하기까지 하구나. 여린 하관과 야물게 닫힌 작은 입매는 네 어미 그대로 연하면서도 야무지구나. 콧날은 군더더기 없이 오만하지만 버선코 끝엔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러운 교태가 묻었고 볼은 고집과 근심을 머금지 않아 순진하기만 하구나. 이슬을 담뿍 머금은 듯 잡티 없는 흰 살결과 산호 입술은 어미의 색을 그대로 물려받았구나. 네가 올 것이란 말을 듣고 매일 기다렸다. 참으로 감회가 깊다. 참으로... "
"두렵다. 그대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대 앞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비굴해지고 결핍감으로 자신을 잃게 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비스듬히 훔쳐보느라 목이 마르리라. 그로 인해 그대 또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런 것을 일컬어 미인박명이라 하는가. 그대는 천하에 고루 사랑을 나누어주고 천하의 사랑을 모두 받으라. 그것이 그대의 운명이로다."
진의 몸에는 분꽃 씨만 한 검은 점이 모두 다섯 개가 있었다. 왼쪽 가슴 산호색 유두 옆에 하나가 있고, 새하얀 배꼽 옆에 하나가 있으며, 잔털이 덮인 음부 왼쪽에도 하나가 있었고, 뒷들의 살짝 솟은 오른쪽 날갯죽지 위에 있고, 하나는 왼쪽 엉덩이 위쪽에 놓여 있다. 신기하게도 누가 정확하게 올려놓은 듯 새하얀 몸에 똑같은 크기의 또렷한 검은 점이 중요한 부위마다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열아홉 봄이어서 더욱 아련하고 청초 미묘하였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할 듯한 무념무상의 단아한 이마와 물속에 유유히 노는 작은 생선의 눈처럼 맑게 응시하는 검은 눈빛과 두려운 듯 오만한 듯 꼭 다물린 산호빛 작은 입술과 일자 배래의 작은 저고리에 묶인 듯한 동그랗고 좁은 어깨와 여리고 긴 팔, 팽팽하게 가슴을 묶은 목련 무늬 수놓인 새하얀 띠와 단아하게 벌어지는 치마폭.
"내 너를 보지 않고도 좋아했으나, 너를 직접 만나니 전설을 대하는 듯 신비하구나. 중국의 주돈이라는 자가 연꽃을 노래했는데 너는 마치 그와 같다. 들어보거라. '진흙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으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얼굴을 씻지만, 교태를 부리지 않는다. 그 안은 영롱하게 뚫려 있고 밖은 꼿꼿이 서 있는 데다 함부로 넝쿨을 엮거나 헤프게 가지를 뻗지 않는다. 그리고 향기는 멀리까지 풍기며 멀수록 더욱 향기가 맑다. 혼자 우뚝 서서 조초롭게 뿌리를 내려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지언정, 가까이서 만지거나 희롱할 수 없다. 그러니 너는 참으로 군자의 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