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6일


오랫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봤다.

요새는 충동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래서 좋아서 그런 것인지 필요해서 그런 것인지를 구분을 못했는데.

마음 속으로 순순하게 좋아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하다못해 외모조차도 내가 평소에 그리던 이상형.

영혼도 자유롭고...

 

근데 그 사람...

결혼했다.

그 사람도 나를 진작에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냥 하는 말.

 

그래 괜찮은 사람은 누군가 이미 다 주워가버렸다.

남아 있는 사람은 하자가 있는 사람이다.

나도 하자가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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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0일



남들은 가을을 탄다고 한다.

난 서른을 탄다.

서른이 코 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두근 해지기 시작했다.

이 두근거림을 이겨보기 위해 술도 마셔보고 사고도 쳐보고 친구들 붙잡고 고민도 털어놔보고.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는 듯.

언니는 차라리 서른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차라리 2010년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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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9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나.'
 
그때 자신을 위해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었고, 인생이 예정 속에서 그토록 간단하고 쉽고 평범한 것인 줄로 알았다. 고모할머니가 해준 무섭고 슬픈 이야기들은 먼 곳의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불행이거나, 지어낸 이야기로만 행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이야말로 이 삶 너머에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몇 번이고,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삶을 넘어섰을 때에야 스스로 수락하는 행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납득하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사람들은 연인들에게 그 일을 가장 궁금해 한다.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라는 이름의 자연성인가, 혹은 서로가, 아니면 둘 중 한 사람의 의지가 개입되었는가, 사물이나 사람, 혹은 공간이건 일이건, 어떤 매개가 있었는가, 혹은 오리무중의 우연인가, 그렇다면 몇 번의 우연인가? 연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시작에 필할 수 없었던 운명적 키를 앞세우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와 타인들에게 승복시킬 신성한 가치와 의미가 생기니까. 그리고 모든 만남은 궁극적으로 연인들이 만족할만한 봉인된 밀의로 가려져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간의 분석은 어떤 지점 이상의 심층적 인과 아래로는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뒷모습이 보이고 옆에서 다른 옆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외부에서 내부를 보아 버리고 아래에서 윗면을 보며 위에서 바닥을 보는 사차원의 시선처럼. 돌이킬 수 없는 전부를 보아 버렸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까. 
 
남녀의 만남이 내포하는 사랑의 전조와 사랑과 사랑의 후반부와 이별이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정도는 혜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랑이란 혜규처럼 영혼에 동창을 앓는 사람들의 질병이었다. 그들은 표피만 껍질이 벗겨지도록 비벼대다가 쉽게 실망하고 더욱 헐고 얼어붙는 영혼을 펄럭이며 영영 해결되지 않는 허기를 안고 제 골방으로 돌아갔다가 해가 바뀌고 바람이 달라지면 다시 영혼의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외출하곤 했다.
 
"욕망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놀라워. 무엇일 것 같아?" "Desiderare. 이 라틴어는 별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는 뜻이야. 놀랍지? 욕망의 원래 뜻은 사라진 별에 대한 향수이며 그리움이야. 사라진 별, 그건 별이 인간의 조상이고 고향이라는 의식의 근원이 욕망이라는 말속에 있는거야. 모든 욕망은 향수인거지.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을 욕망할 수는 없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실은 상실한 것에 대한, 말하자면 소유한 경험에 대한 향수라는 말이기도 해. 과거에 가졌던 것을 우린 욕망하는 거야."
 
"자신의 사랑을 알기란 정말 어려워. 스스로 말이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도 정말 어려운 거야. 그 다음엔 그 사람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도 어려워. 게다가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는 건 기적이야. 하지만 여러 겹의 단계를 통과하면서 난 자신을 믿게 되었어. 첫눈에 빠져드는 사랑을 믿지만 동시에 사랑은 삶 속에서 단련되고 깊어진다는 것도 알아. 사랑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많은 경험들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실제로 행동하겠구나.'하는 확신이 왔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어. 그건 혈관을 따라 혈액이 아니라 빛이 모여들듯, 내부로 흘러 들어온 뚜렷하고 강렬한 확신이었어."
 
"사랑하는 연인들이란, 무슨 일이든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악어도 먹을 수 있고, 살인을 할 수도 있고, 산채로 무덤에 함께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어. 그들은 타인들의 납득을 필요로 하지 않아. 사랑의 범주 안에서는 도덕과 부도덕의 제도적 구분도, 선과 악의 사회 윤리적 구분도, 심지어 행복과 불행의 세속적 가치조차 무의미해. 왜냐하면 때론 더 나쁠수록, 더 위험할수록, 더 불행할수록 사랑은 더 강렬하게 증명되거든. 난 이제 그걸 알아."

---11월 16일
늦잠 잤다. 월요일인데 운동을 가지 않았다. 주말에 체력 소모가 많았는지, 너무 힘이 들어 그냥 누워서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몇십장 안 남아서 다 읽어버렸다. 책이 너무 좋아서 천천히 읽으려고 꽤 노력했었는데. 나 조금 바보같다. 소설책을 읽으면 등장인물에게서 나를 찾으려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굴곡이 많은 주인공이나, 그 주변인물들이 나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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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6일

추운 겨울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문득 이상형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따뚯한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힘들 때 말 한 마디로 위로해줄 수 있고, 꼭 안아줄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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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4일


Day 09

 

1. default 태만, 소흘히 하다

2. depend 의존하다, ~에 달려있다

3. perpendicular 직각의, 수직의

4. persecute 박해하다

5. consecutive 연속적인, 지속되는

6. confirm 확인하다

7. infirmary 요양소

8. inoculate 접종하다, 주사 놓다

9. binoculars 쌍안경

10. bicentennial 이백년 마다의, 이백주년의

11. perennial 다년생의, 영원한

12. perturb 당황시키다, 불안하게 하다

13. disturb 혼란시키다

14. dissect 해부하다

15. resect 절제하다

16. repulse 격퇴시키다

17. impulse 충동, 자극

18. implicate 관련시키다, 연루시키다

19. accomplice 공모자, 공범자

20. accelerate 가속하다

21. decelerate 감속하다

22. desist 그만두다

23. persist 지속하다

24. pertain 관련이 있다

25. retain 유지하다, 보존하다

26. recipient 수령자

27. incipient 초기의

28. incisive 날카로운

29. excise 베어내다, 세금

30. exaction 징수

31. transaction 거래

32. transmute 변형시키다

33. commute 통근하다

34. commotion 소동

35. promote 증진시키다, 승진시키다

36. procession 행렬

37. recess 휴식시간, 움푹 들어간 곳

38. recondite 심원한, 알 수 없는

39. ensconce 숨기다, 편히 앉히다

40. entomology 곤충학

41. epitome 본질, 요약

42. epidemic 역병, 유행병, 전염성의, 만연해진

43. demagogue 민중선동가

44. pedagogue 선생, 교사

45. orthopedist 정형외과의사

46. orthography 철자 맞춤법

47. telegraph 전보

48. telepathy 정신감응

49. sympathize 공감하다, 동정하다

50. symposium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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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4일

나 스물 한 살 때의 일이다. 당시 싱글이었던 나.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대학동이가 굳이 부탁을 하지 않는 나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당시의 난 남자친구의 필요성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으므로 꽤 여러 번 거절했것만 그 친구는 내켜하지 않는 나를 얼르고 달래어 소개팅 날짜를 잡아주었다. 아! 그 친구 남자였다.

소개팅 장소는 대학로. 늦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게 해야 해" 이런 말 조차 들어보지 않았던 선머슴같았던 나 소개팅 장소에 30분 일찍 나갔다. 그 때 난 두건에 약간 미쳐있었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부모님이 함께 있지 않은 나는 항상 두건을 쓰고 있다. 그 소개팅 날도 나름은 멋을 내겠다는 것이었는지 검은색 두건에, 검은색 긴팔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내가 아끼던 형형색색으로 된 5센치 정도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한 나는 지금도 간간히 나의 취미인 뜨개질을 하면서 베스킨라빈스 앞에 있는 큰 나무 밑 벤치에 앉아있었다. 뜨개질에 몰두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1시 40분. 주선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했던 것 같다. 10분쯤 흘렀을까, 주선자인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소개팅남이 일이 생겨 조금 늦는다고 미안하지만 기다려 달라고. 날이 생각보다 더워 짜증이 났었지만 동기의 얼굴을 봐서 참고 기다렸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1시 30분 이었지만 시계는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저 멀리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한 남자. 아~ 난 멀리서 양파가 공중에 떠 있는 줄 알았다. 흡사 '이나중탁구부'의 다케다나 '마루코는 아홉살'의 노마 자식같이 생긴 양파가 저 멀리서 걸어오며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턱 막혔다. 외모가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료품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것 아닌 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동기의 얼굴을 봐서 참았다. 40분이나 늦은 사람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학교 선배였다. 깎듯하게 인사를 하고 늦을 수도 있다라는 말과 베시시한 미소를 지었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난 정말 배가 고팠고, 소개팅의 당연한 순서인 식사로 이어질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 "축구하다가 밥 먹고 와서 배가 안 고프네, 너는 뭘 먹어야 하겠니?" 이 사람 내가 정말 마음에 안 드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너무 비굴하게, "저는 배가 좀 고파서요. 저 간단하게라도 무엇이든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계산은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니, 내가 맛있는 곳 알고 있는데 거기 데려갈게. 내가 사줘야지 늦었으니."라고 한다.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했다. 그리고 데려간 곳, 2500원짜리 왕돈까스를 파는 집. 나 정말 2500원짜리 돈까스 먹고 싶지 않았다. 그 잘 먹는 내가 돈까스를 남겼다. 남겼다... 정녕 먹고 싶지 않았다. 먹고 나서도 내가 계산하겠다고 했다. 바로 집에 갈 요량으로. 그러나 그는 무슨 큰 인심을 쓴다는 듯이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냥 그러게 뒀다.

그러던 그 양파남, 마로니에 공원쪽으로 걷자고 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학교 선배에다 동기의 주선, 너무 많은 것들이 머릿 속에서 맴돌아, 그냥 자포자기 심정으로 양파남을 따라 걸었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던 중 길거리 공연이 있었다. 두 남자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을 웃기는, 흡사 만담같은 것. 그런데로 재밌어 한참을 보다가, 왠지 기분이 풀려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내 얼굴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양파남이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서 재미있는 것을 하자고 했다. 뭐가 재미있는 것일까 약간 궁금해하며 따라 갔더니 이번엔 배드민턴을 치잔다. 아무리 여름이 끝날 무렵이라고 해도 더웠고, 두건을 쓰고 있었고, 힐을 신고 있었던 나에게... 아~ 뜨악했다. 그런데 그냥 쳤다. 약 한 시간 가량을 공원 한 가운데서 배드민턴을 쳤다. 그것도 꽤 열심히. 사실 악으로 쳤다. 열심히 치고 피곤하다고 말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배드민턴을 치고 꽤 더워졌는지 양파남이 그늘에서 쉬자고 했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았다. 양파남, 말을 시작했다. 자신의 취미는 시를 짓는 것이라고. 좋아하는 시도 많다고. 그러면서 김춘수의 "꽃"을 마로니에 공원 한 복판에서 큰 소리로 나에게 읊어주었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공포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봤다. 양파남이 아닌 모든 이가 나를 쳐다봤다. 애처로운 눈길로. 너 왜 거기에 그러고 앉아있느냐는 힐난의 눈길도 있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그냥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라도 보이지 말자는 심정으로.

더 이상은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만 들어가봐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양파남 자기는 소개팅 나와서 그냥 들어가는 나같은 여자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노골적으로 뭐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인사동을 가자고 한다. 아 정말 이쯤에는 살의가 생기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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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일


뽀뽀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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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일


한 일주일 빠져서 읽었다. 밤에 늦게 자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일단 손에 잡기 시작하면 놓지 못하던 책이었다.

조선시대 기녀이야기가 뭐 그리 와닿았다고, 마음이 같이 휩쓸려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요새 위태위태한 나의 상태에 신경질이 나 있던차에 차분하게 나를 생각해 볼 시간을 준 책이랄까.

어울리지 않는 놀이는 이제 그만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도 이제 그만이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이제는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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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일


"아니나 다를까, 종지만 한 얼굴이 벌써 마음을 쓰이게 하는구나. 여자인물이란 눈길을 너무 붙잡아도 박복한 법이거늘."

 

그 무렵 진은, 마치 물에 뜬 한 송이 연꽃 같은 자족과 적요와 선량한 광휘에 감싸여 천지신명의 편애를 받고 있는 듯했다. 어린 처녀지만 그 빛으로 누구라도 무릎을 꿇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녀의 표정이 은은하고 동작이 곧고 깨끗하며 자태가 가늘지만 풍성합니다. 몸 안에 등을 견 듯 표정이 환하고 윤택한 흰 살결에 머릿결은 청실처럼 푸른 광택이 나며, 눈썹과 눈동자는 검고 입술을 붉으며 눈과 코와 입과 귀, 어느 하나 걸림이 없이 부드럽고 윤곽이 단정하면서도 안개가 서린 듯 오묘해 자세히 보려 하면 오히려 아련해지니 참 이상하지요. 인물이 이목을 끄니 공연히 남의 집에 오르내릴까 저어되기는 하지만, 행실이 반듯하고 오연한 데다 학문을 갖추었고 재력까지 겸비한 좋은 집안의 의젓한 장녀이니 천하의 규수입니다."

 

"하긴 지금 와서는, 친척이 아닌 친척이야말로 저 아이에겐 더 큰 괴로움일 테지요. 성미도 까다롭고 체질도 특이합니다. 워낙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지요. 마음먹는 그대로 몸이 따라가는데,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황 진사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대로 누운 채 오장육부를 가만히 정지시킬 수도 있는 체질입니다.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장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갔을 때 느낀 것인데, 환자의 몸에서는 사람을 혼미하게 하는 강렬한 향내가 납니다. 제 몸도 뜻대로 하지만, 남의 몸까지 뜻대로 할 것입니다."

 

"아씨, 이 방에서는 향기가 나오. 아씨가 없을 때는 연향같이 은은하지만 아씨가 자고 일어나면 연향이 깊어져 달콤하고 아련하고 몽롱해져요. 때론 어찌나 강한지 정신이 혼미하여 입이 헤벌어지고 침이 흐를 지경이라오. 간혹 이런 여자가 있다고 말은 들었어도, 참 신기하고. 아씨는 낭군님을 잘 만나야지 허술한 사내는 아마 명대로 못 살 것이오."

 

"곱다. 어미보다 더 곱구나. 네 어미 몸에서 나던 연향이 네게서도 난다. 참으로 퍽 닮았구나. 아련히 그늘진 검고 조용한 눈은 어미보다 영특하고 반듯한 이마엔 의젓한 빛이 어려 늠름하기까지 하구나. 여린 하관과 야물게 닫힌 작은 입매는 네 어미 그대로 연하면서도 야무지구나. 콧날은 군더더기 없이 오만하지만 버선코 끝엔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러운 교태가 묻었고 볼은 고집과 근심을 머금지 않아 순진하기만 하구나. 이슬을 담뿍 머금은 듯 잡티 없는 흰 살결과 산호 입술은 어미의 색을 그대로 물려받았구나. 네가 올 것이란 말을 듣고 매일 기다렸다. 참으로 감회가 깊다. 참으로... "

"두렵다. 그대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대 앞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비굴해지고 결핍감으로 자신을 잃게 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비스듬히 훔쳐보느라 목이 마르리라. 그로 인해 그대 또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런 것을 일컬어 미인박명이라 하는가. 그대는 천하에 고루 사랑을 나누어주고 천하의 사랑을 모두 받으라. 그것이 그대의 운명이로다."

 

진의 몸에는 분꽃 씨만 한 검은 점이 모두 다섯 개가 있었다. 왼쪽 가슴 산호색 유두 옆에 하나가 있고, 새하얀 배꼽 옆에 하나가 있으며, 잔털이 덮인 음부 왼쪽에도 하나가 있었고, 뒷들의 살짝 솟은 오른쪽 날갯죽지 위에 있고, 하나는 왼쪽 엉덩이 위쪽에 놓여 있다. 신기하게도 누가 정확하게 올려놓은 듯 새하얀 몸에 똑같은 크기의 또렷한 검은 점이 중요한 부위마다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열아홉 봄이어서 더욱 아련하고 청초 미묘하였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할 듯한 무념무상의 단아한 이마와 물속에 유유히 노는 작은 생선의 눈처럼 맑게 응시하는 검은 눈빛과 두려운 듯 오만한 듯 꼭 다물린 산호빛 작은 입술과 일자 배래의 작은 저고리에 묶인 듯한 동그랗고 좁은 어깨와 여리고 긴 팔, 팽팽하게 가슴을 묶은 목련 무늬 수놓인 새하얀 띠와 단아하게 벌어지는 치마폭.

 

"내 너를 보지 않고도 좋아했으나, 너를 직접 만나니 전설을 대하는 듯 신비하구나. 중국의 주돈이라는 자가 연꽃을 노래했는데 너는 마치 그와 같다. 들어보거라. '진흙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으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얼굴을 씻지만, 교태를 부리지 않는다. 그 안은 영롱하게 뚫려 있고 밖은 꼿꼿이 서 있는 데다 함부로 넝쿨을 엮거나 헤프게 가지를 뻗지 않는다. 그리고 향기는 멀리까지 풍기며 멀수록 더욱 향기가 맑다. 혼자 우뚝 서서 조초롭게 뿌리를 내려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지언정, 가까이서 만지거나 희롱할 수 없다. 그러니 너는 참으로 군자의 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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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일


열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역시 이렇게 아프다 마는가.

뭐 믿고 이렇게 튼튼하시지.

감기에 걸려본 적도 손에 꼽고,

병원에 입원해 본적도 한 번도 없고.

나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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